해풍에서 난 부드럽고 고소한 우도 땅콩 맛보기,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
제주도 우도에 다녀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 모양이 꼭 소가 누운 것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우도. 옛날 제주 사람들은 ‘소섬’, ‘쉐섬’이라고도 불렀단다. 길이 3.8km, 둘레 17km에 불과한 제주도의 부속 섬으로 작고 소박하지만, 외국 해변 못지않은 쪽빛 바다와 웅장한 해안 절벽, 천연기념물로 꼽히는 홍조 단괴 해변까지… 우도에는 신비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제주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보아야 할 필수 관광지 아닐까 싶다.
우도는 작은 마을이라 전기차로 금방 둘러볼 수 있다. 여기저기 한가로이 다니다 보면 까만 밭이 많이 보이는데 땅콩밭이 대부분이다. 보리, 마늘과 쪽파 등을 재배하기도 하지만 후작물로는 보통 땅콩을 많이 일군다. 땅콩밭이 특히 많은 만큼 우도 어느 카페에 들어가도 땅콩을 주재료로 한 디저트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나도 이번에 우도 여행을 하면서 두어 번 땅콩 아이스크림을 맛봤다.
처음 간 곳은 블랑로쉐라는 카페다. 하고수동 해변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데 바다가 보이는 통창이 있다. 화이트 톤의 건물 외관과 깔끔한 인테리어, 좋은 위치에 기대하면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아쉬웠다. 조용한 바다 마을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마케팅을 많이 한 걸까 너무 붐비고 시끄러웠다. 중국인 관광객들도 꽤 많았다. 우도 안의 제법 큰 카페인만큼 메뉴는 다양했다. 우도 땅콩으로 만든 빙수와 크림 라떼, 아이스크림 등을 판매한다. 나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해변가 앞 상가에서 종이컵에 내어주는 땅콩 아이스크림과 비슷했다. 달고 갈증을 유발하는 맛이랄까. 별다른 인상을 받을 수 없었던 곳이다.
또 다른 한 곳은 훈데르트바서파크 안에 있는 우도넛이다. 전기차로 우도를 한 바퀴 돌고 나가려고 하다가 우연히 산책로 코스가 무료라고 해서 들어간 곳이다. 프르드리히 훈데르트바서는 세계적인 건축가 겸 환경운동가이자 오스트리아의 3대 미술가 중 한 명인데, ‘훈데르트바서하우스’, ‘쿤스트 하우스 빈’, ‘바트블루마우’ 등이 그의 대표적인 건축예술작품이라고 한다.
이 테마파크는 그의 생전 건축 작품들의 컨셉과 디테일들을 구현한 복합 관광 단지로, 갤러리, 산책코스, 리조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우도에 웬 대형 관광 단지인가 싶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주장했다는 훈데르트바서의 정신을 계승한 듯 나무도 많고 자연스럽게 조성된 환경이 아름다웠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자연. 개인적으로는 스페인에 있는 가우디 건축물이 떠오르기도 했다. 대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어 직선이 아닌 곡선을 사용한 것도 그렇고… 훈데르트바서를 ‘오스트리아의 가우디’라고도 부른다고 하니 내 이런 감상이 틀린 것만은 아닌가 보다.
훈데르트바서파크 입구에 있는 우도넛도 규모는 꽤 크다. 통유리로 되어 있는 커다란 건물이 시원한 개방감을 준다. 내부도 크고 깔끔한 데다 곳곳에 대형 화분이 있어서 자연스럽고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도 나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전에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전에 먹은 건 소프트아이스크림에 우도 땅콩이 뿌려진 흔한 스타일이었다면, 우도넛에서 먹은 것은 땅콩 자체가 아이스크림에 녹아 있는, 깊고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었다. 색도 연한 갈색빛을 띤다.
땅콩을 평소에 즐겨 먹지는 않지만, 우도에 오면 꼭 한 번쯤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어야만 할 것 같다. 부드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땅콩 가루가 송송 뿌려진 땅콩 아이스크림은 한 번쯤 우도의 대표 간식 같은 느낌 아닌가! 그런데 우도는 땅콩이 왜 이렇게 유명한 걸까?
땅콩(peanut, groundnut)의 학명은 ‘Arachis hypogaea’다. ‘잡초’를 뜻하는 arachos에 ‘땅속 열매’를 뜻하는 hypogaea가 더해진 말로, ‘땅속에 열매를 가진 잡초’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중화 문화권에서는 낙화생(落花生)이라 하여 ‘지상에서 꽃이 진 후 지하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땅콩은 영양학적으로 탁월한 콩 중에서도 하늘로 뻗지 않고 감자처럼 땅속에서 열매를 맺는다. 견과류의 왕이라고 불릴 만큼 영양분이 풍부하다. 단백질도 아몬드보다 21%나 많이 들어 있고, 엽산도 마카다미아의 22배, 호두의 2.5배 수준이라니 놀라운 수준이다.
쨍쨍한 볕과 일정한 고온을 유지하는 우도의 땅콩은 향미가 독특하고 영양이 가득하다.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고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해서 건강에도 아주 좋다고. 우도 땅콩은 제주도 전역에서 유일하게 A등급을 인증받은 제주도 공인 농산물이라고 하니 일부러 찾아 먹어봄 직하다.
우도의 땅콩 재배는 198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땅콩 재배 면적을 확대하기 위해서 육지부 산 영호땅콩 종자 3톤을 들여와서 백여 농가에 보급하면서 본격적인 땅콩 재배가 시작되었다. 겨울철 보리 수확이 끝나고 재배에 들어가는 땅콩 농사가 수월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생육기간이 짧은 품종을 한 밭에서 계속 해서 재배한 탓에 흰비단병 등 병해가 발생하기도 했단다. 이후 지자체와 땅콩영농조합이 다양한 품종을 시험 재배하고 새로운 재배 방법을 도입하는 등 땅콩이 우도 명물로 자리 잡는 데까지는 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
좋은 품질의 땅콩을 생산해 낸 것에 이어 땅콩으로 다양한 우도만의 시그니처 간식들을 만들어 내면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우도의 땅콩 중에는 금 성분이 함유된 황금 땅콩도 유명하다. 그 상품성을 인정받아 2011년부터는 일본으로 수출도 시작했다고 한다. 좋은 환경과 지자체의 정보력과 지원, 농민들의 피와 땀이 모이면 이처럼 하나의 산업, 하나의 문화를 일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쭉한 일반 땅콩에 비해 작고 둥근 우도 땅콩은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향이 일품이다. 거센 바람과 물이 고이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자란 우도 땅콩은 해풍의 영향으로 크기가 작고 부드럽다. 크기가 작은 데다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데, 이 속껍질이야말로 ‘레스베라틀로’라는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있어서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는 건강 포인트라고 하니 다음에 우도 땅콩을 사서 먹게 된다면 꼭 껍질째 먹어봐야겠다.
여행은 역시 음식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 같다. 맛도 좋고 영양은 말할 것도 없는 땅콩. 우도에 들른다면 꼭 한 번쯤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