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쫄깃한 대만 밀크티의 정석, 공차를 현지에서 맛보다
식도락 여행으로 딱인 대만. 그중에서도 버블티는 반드시 맛보아야 하는 대만 국민 음료다. 최근 대만에 갔을 때도 물론 버블티를 마셨는데, 우연히 우리나라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공차를 발견하고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쫀득쫀득한 펄과 달콤하고 시원한 밀크티가 매력적인 공차. 대만 현지에서 먹어보니 가격도 훨씬 저렴했고, 우리나라에서 개발되어 출시된 메뉴도 있어서 고르는 즐거움이 있었다. 대만에는 공차 외에도 우스란, 텐런밍차, 코코, 차탕회 등 다양한 밀크티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있다. 오히려 공차는 현지에선 덜 유명한 편. 그런데 밀크티가 대만의 국민 음료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요즘 즐겨 먹는 스타일의 밀크티는 홍콩과 대만에서 비롯했지만, 그 역사는 유럽으로 보는 것이 역시 일반적이다. 밀크티 음용이 발견된 첫 기록은 프랑스 파리의 사교계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인도에서도 찻잎을 우유와 함께 마셨다고 하니 밀크티의 출발점은 정확지 않다. 분명한 것은 차의 쓴맛과 떫은맛을 중화시켜 부드럽게 먹기 위함도 있지만 비싼 홍차에 우유를 타 먹는 데에는 신분 과시의 이유도 일부 있었다는 것이다.
홍차의 나라 영국에서는 밀크티를 우리가 보리차를 마시듯 물 대신 홀짝거리는 용도로 마신다고 한다. ‘Dash of milk’, ‘Splash of milk’로 불리는 만큼, 별다른 레시피 없이 컵에 물을 가득 붓고 홍차 티백을 우린 후 우유를 조금 따르는 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아주 밍밍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공차 밀크티와는 아주 다른 맛이다.
그렇다면 ‘공차식’ 밀크티의 기원은 어디서부터일까. 1655년 중국 황제 만찬회에 초대된 영국대사가 우유를 넣어 무이차를 마신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평소 차의 떫은 맛을 거북해 하던 영국 대사가 거절할 수 없는 차 대접에 임기응변을 발휘했고, 이후로 이 제조법이 유행처럼 퍼져 부드럽고 풍성한 차 맛의 정석이 되었다고. 무이차는 우리가 잘 아는 우롱차로, 역사 깊은 중국의 차인데 당나라가 몰락할 때쯤에는 무이차를 공차(바칠貢, 차茶)라고 이름 지어 황실에만 납품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익히 아는 브랜드 공차와 한자가 같다.
그런데 우리가 즐겨 먹는 대만식 밀크티는 사실 ‘밀크티’보다는 ‘버블티’로 불리는 게 더 보편적이다. 현지에서는 쩐쭈나이차(珍珠奶茶)라고 부르는데 쩐주는 진주(버블), 나이차는 밀크티를 뜻한다. 이 쩐주나이차는 열대작물 카사바의 뿌리에서 채취한 식용 녹말로 타피오카 펄을 만들어 밀크티에 넣은 것이다. 1980년대 대만 타이중의 춘수당이라는 찻집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직원회의에서 제품 개발 관리자가 대만의 떡빙수인 펀위엔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 들어있는 달짝지근한 타피오카 알갱이를 차가운 아쌈차에 넣고 마시는 기행을 벌였다고. 이 맛이 같이 회의하던 사람들에게 호평받아 판매를 시작하면서 엄청난 판매량를 올렸고, 쭉 가게의 효자 메뉴가 되었다.
대만의 대표 음료가 된 버블티는 90년대부터 대만의 이웃 국가 중국,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퍼져 나간다. 2000년대 이후부턴 한국에서도 ‘공차’라는 브랜드를 시초로 유행이 시작되었으며, 북미권이나 뉴질랜드 등 서구권 국가에서도 인기를 끌게 되어 명실상부 대만을 대표하는 음료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공차가 들어오게 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공차의 김여진 전 대표는 영국계 IB 기업 Barclays에 다니는 남편을 따라 싱가포르에서 살다가 싱가포르 지점 공차에서 버블티를 처음 접했다. 국내에 들이면 100%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 그녀는 바로 본사로 찾아가 어렵게 마스터 프랜차이즈를 따내고 국내 판권을 계약하게 된다. 2012년 홍대에 공차 1호점을 내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서 32살에 340억 원을 벌어들였다고 하니 놀라운 성과다. 당시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국내 판권을 샀다고 하는데 역시 성공한 사업의 배경에는 절실함과 과감한 선택, 실행력이 있는 것 같다.
게다가 한국에 공차를 들여올 당시 김 대표는 본점에서 청소·설거지를 하면서 제조 비법을 익혔다고 한다. 과연 현지의 맛과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 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2014년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유니슨캐피탈에 인수된 공차 코리아가 2017년 본사인 대만 RTT(로열 티 타이완) 지분 70%를 인수하면서 한국 브랜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스무디킹코리아에 이어 한국지사가 글로벌 식음료 프랜차이즈 본사를 사들이는 두 번째 사례라고 한다. 미국이 매각한 지분 67.5%를 신세계에서 확보해 최대 주주가 된 스타벅스코리아와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공차는 초기에 홍차와 우유를 섞은 블랙 밀크티에 펄을 넣어 팔았으나 갈수록 메뉴가 다양해지면서 타로, 다양한 종류의 밀크티, 청량음료, 과일 음료 등에도 펄을 넣어 판매했고, 각자의 입맛에 맞게 당도와 얼음양 등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지금도 무리한 매장 확장보다는 선별적 점포 개설로 안정적인 매출을 일궈내고 있다.
이처럼 공차의 버블티를 비롯해 대만 국민 샌드위치 홍루이젠, 딘타이펑, 한때 크게 유행했던 대만 카스텔라까지… 그러고 보면 대만 먹거리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다. 이마트 자체 브랜드 피코크에서는 파인애플 잼이 들어간 대만 과자 펑리수를 현지 업체와 함께 개발해 내놓기도 했다. 괜히 ‘요식업을 하려면 대만 먹거리 시장을 조사하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식도락 여행을 하러 대만을 찾는 사람도 많은 만큼, 대만은 역사적으로 일본과 중국의 문화가 섞여 있어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맛도 친숙하다. 합리적인 가격은 물론이다. 현지에서 반가운 공차를 만나 맛있는 버블티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쩌면 해외의 사업을 들여와 역수출하는 제2의 공차 창업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그 지역의 맛과 특성을 좀 더 사업가, 투자자의 눈으로 잘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