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대만 타이베이 여행] 여행 일정 추천_About 대만 고궁 박물원_세계 5대 박물관

by 에트왈JS 2023. 7. 23.
반응형

About 대만 고궁 박물원


 

장제스는 “나라가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문물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만큼 중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그는 국공내전에서 패배하면서 당시 자금성에 보관하고 있는 유물 중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29만여 점을 대만으로 옮겨 가지고 가게 된다. 이때 가져온 유물들을 기반으로 대만 고궁 박물원이 세워졌다.

보유하고 있는 유물의 엄청난 양으로 인해 ‘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박물원’이라는 박물관 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여겨지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명칭에는 다소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라는 중화사상의 그늘이 깔려 있는 듯도 하다. 장제스가 옮겨 가지고 온 유물은 자금성에서 29만 여점,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6만 8,000점을 선정하여 약 30만 점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었고, 현재 상설전시 유물을 제외하고는 3개월 단위로 유물을 변경하여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연 8,000여개에 달하는 순환배치 작품들을 모두 감상하기 위해서는 60년 가량이 소요된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매년 3,000여점 이상 컬렉션이 증가하면서 2019년에 이미 70만 점 돌파 행사가 개최되기도 했다고 하니 이 모든 유물을 감상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어쨌거나 일 년에 4번을 방문한다 해도 각각 다른 유물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바티칸의 바티칸 미술관,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세계 4대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곳들을 이미 다녀왔기 때문에 최근 다녀온 대만 여행에서 국립고궁 박물원을 다녀오게 되면서 필자는 세계 5대 박물관을 모두 방문하게 되었다. 대만 고공박물원이 다른 박물관과는 다르게 이색적인 점은 아시아 문화권의 유물들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점은 대만 고궁 박물원이 가진 가장 고유한 특색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대만 고궁 박물원의 상당수의 유물은 주로 청동기, 유명한 서예작품이나 그림들, 그리고 주로 명·청 시대의 궁중유물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양성이라는 측면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엄청난 규모의 유물들과 전시품들을 고려한다면, 이런 단점을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유의해야할 점은 큰 가방이나 음식, 음료는 소지할 수 없다. 어느 정도의 사이즈가 있는 가방의 경우 입구의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대부분 사진촬영이 가능하지만, 플래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물론 중요한 국보급 문화재나 유물은 촬영을 금지하는 표시를 두었기 때문에 이런 경우 무리하게 촬영을 시도하다가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대부분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그렇듯이 회화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2층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한국어 팜플렛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필자는 방문했을 때, 음성 해설이 제공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활용하지 못했지만, 한국어 음성 해설이 꽤나 상세하게 제공이 된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유물 앞에 붙어 있는 해설 번호를 입력하면 한국어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충분히 관람하기 위해서는 대략 6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니 방문 시 넉넉한 시간의 여유를 두고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대표적인 전시품들

대만고궁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유물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은 동파육을 조각한 육형석과 취옥백채이다. 고궁 박물원 내부의 식당에서는 이 유물들과 유사한 외양의 음식들을 판매하고 있기도 해서 꽤나 흥미로웠다. 유물들이 조각된 시기를 생각한다면 그 섬세함과 실제와 같은 재현방식에 깜짝 놀라게 된다. 남부분원을 개관한 이후 6개월 단위로 육형석과 취옥백체는 상호 교차 전시되고 있다.

취옥백채 (옥배추, 좌) / 육형석 (동파육, 우)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육형석이 전시되어 있었다. 옥으로 조각한 동파육인 육형석은 청나라 시대의 유물로 그 색감이나 질감 모든 것이 실제 음식을 그대로 재현해낸 정말 놀라운 작품이다. 돼지 껍데기의 색과 질감, 모공, 진피층까지 세밀하게 표현이 되어 있으며, 벽옥의 자연적인 결을 활용하여 만든 작품이다. 그 당시 기술로 이정도 수준의 극사실적인 재현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아쉽게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취옥백채는 청나라 제11대 황제 광서제의 부인 근비가 결혼할 때 가져온 혼수품으로 알려져 있다. 다산을 상징하는 메뚜기와 여치가 배추에 앉아 있는 모습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초록색과 회백색이 절묘하게 혼재되어 있지만, 사용된 재료의 등급으로만 본다면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있는 옥은 2등급 이하의 품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인은 이 재료의 특성을 활용하여 배춧잎과 초록색과 줄기 부분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고 한다.

 

세공의 능력도 대단한 것이지만, 육형석이나 취옥백채 모두 그 재료 본연의 특성을 활용했다는 점에서는 장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심미안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탁월한 재료를 잘 가공하는 것도 훌륭한 테크닉이겠지만, 가치가 떨어지는 재료에 상상력을 입혀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은 위대한 테크닉일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취옥백채의 경우 군벌 순뎬잉이 군자금 마련을 위해 일으켰던 <동릉(东陵) 도굴사건> 때 서태후(西太后)의 무덤에서 나온 보물이라는 점이다. 그 말인즉,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던 서태후가 죽어서도 취옥백채를 자신이 소유하고자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취옥백채가 돈을 벌어다 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대만의 집에는 취옥백채 모형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직접 관람하지 못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상아투화운룡문투구

 

취옥백채를 관람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필자의 눈을 이끈 또 하나의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상아로 만든 공으로 명칭은 상아투화운룡문투구이다. 이 작품은 한 개의 상아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는 세공품으로 무려 17개의 공으로 이루어져 있다. 밖에서부터 깍아내기 시작해서 안에 있는 공까지 세공하는데 무려 100년, 3대에 걸쳐 제작된 작품이라고 하며, 현대 기술로도 재현이 불가능한데다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지 미상으로 남겨져 있는 미스터리한 작품이다. 공의 위아래의 고리와 세공품까지도 단 하나의 상아로 조각된 작품이라고 하니 그 놀라움이 더하다.

 

물론 이 유물들을 둘러싼 소유권과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정책 등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들로 인해서 외부적으로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문제들도 많은 듯 하지만, 예술은 인간의 번잡함을 뒤로 하고 언제나 그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는 참 위대하다. 장인은 이미 사라졌지만, 작품을 통해 남겨진 장인의 테크닉과 심미안은 여전히 미스터리한 것으로 남아 후대들을 감탄하도록 만들고 있다.

 

반응형